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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품기 아까운 삶: 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 이순자(휴머니스트)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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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품기 아까운 삶: 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 이순자(휴머니스트)

붓프레스 2022. 6. 1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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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자. 작가보다는 평범한 중년 어르신이 떠오르는 이름이다. 이 작가님을 알게된 건 2021년 매일신문 시니어문학상 논픽션 부문에 당선된 <실버 취준생 분투기>가 sns에서 이슈가 된 후였다. (지금도 인터넷에 전문이 게제되어있다.) 취업준비생은 20대에게 익숙한 표현이라 생각해서 62세에 취업 전선에 나선 경험은 색다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취업에 간절한 어르신에게 향하는 냉혹한 사회와 현실이 뼈 속에 더 박혔었다. 더욱 마음이 아팠던건 글을 읽자마자 알게된 작가님이 당선된 후 얼마뒤 세상을 떠났다는 부고였다. 뒤늦게나마 작가로서의 발을 딛은 문턱 앞에서 날개가 꺽인 것 같아 안타까웠다. 몇 달 후에 산문집 출간 소식을 듣고 이순자라는 사람에 대해 더 알고싶었기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이순자 작가는 4대가 함께 사는 종갓집 맏며느리로 결혼 생활을 시작했으며, 20여 년 넘게 호스피스 등의 봉사활동을 했다. 황혼 이혼 후 평생 하고 싶던 문학을 공부하고자 문예창작과에 진학했다. 고단한 삶에도 자기 존엄을 지키며 글쓰기에 정진한 그는 <솟대문학>에 시를 발표하고, <순분할매 바람났네>로 제 16회 전국 장애인 문학제에서 대상을 받으며 창작의 결실을 맺었다.

이 책 제목이 나올 수 있었던 산문을 소개하고 싶다. 작가는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강원도 평창에 무허가 집을 사서 내려갔다. 뒷집에는 아흔을 넘긴 노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친해져서 제 집처럼 드나들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집 근처에 은행나무 암수 한 쌍이 있는데 할머니가 나이테 중앙에 핀 들깨꽃을 보며 말했다. "얘야, 이거 봐라. 깨가 지절로 피었다. 이게 똑 너 닮지 않든? 어디서 날아왔는지 몰라도 조금 있으면 깨 송이 영글 텐디, 영글어 너처럼 고수불 텐디. 니도 고순 냄새 풍기고 가버릴 거지? 진정으로 말해보거래이." 이사 온지 겨우 반년인데 저리도 깊은 정을 품었나 싶어 작가는 가슴이 찡했다. 그렇게 1년쯤 살다 지병인 심장 통증으로 구급차에 실려 서울로 올라가며 작가는 자신이 깨꽃이라고 느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려운 생활에도 이웃을 먼저 돌보는 따뜻함과 용기에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지만, 어디서 저런 힘이 나올까 싶었다. 종갓집 맏며느리로 명절이면 100명의 손님을 치르고, 시동생 결혼식 음식도 시할머니 상을 당했을 때도 집에서 300명 손님을 혼자 치를 수 있었던, 심지어 그것을 즐거운 마음으로 했던 힘이. 솔직히 지금 시대를 사는 내가 보기엔 미련해보이기도 하고 우리 어머니 일처럼 속상하기도 하다. 작가는 젊은 시절 공장의 사무직으로 일할 때도 생산직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을 알고 경찰에 끌려가는 위험한 상황에 처하면서까지 노조를 결성하려했고 온몸으로 저항했다. 그러면서도 그 행동을 오지랖이라고만 생각한다.

어릴 적 아버지의 얼굴도 모른 채 태어나 유복자(태어나기 전에 아버지를 여읜 자식.)로서 아픔을 겪었고 그 고통을 알기 때문에 본인보다 더 어려운 남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고 한다. 공감을 잘하고 경험에서 우러나는 것을 수긍하며 살았기 때문에 이렇게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고 갔으리라 생각한다. 바보도, 천사도, 무늬만 천사도 아닌 그냥 나, 이순자로 인정받고 싶어하셨으니 그 바람은 이루어진 것 같다. 이 산문집에는 이순자라는 사람의 '가슴 속에서 제멋대로 찧고 까불었던 하고 싶은 말'이 또박또박 적혀있다. 혼자 품기 아까운 삶의 이야기가 있다. 오직 이순자 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읽을 수 있어서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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