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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책

아침드라마의 귀환을 기다리며: 아무튼, 아침드라마, 남선우(위고)

붓프레스 2022. 6. 17.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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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서점 매대를 보면 참 예쁘다 싶은 디자인의 책들이 많다. 책 표지만 구경해도 시간가는 줄 모르는데, 그중에서도 이 책의 표지는 다른 의미로 단연 눈에 띈다. 입에 머금은 주스를 주르륵 흘리는 남자의 하관 이미지로 꽉 채운 표지. 어디서 본 것 같은 익숙한 장면. 이것은 mbc 아침드라마 '사랑했나봐'의 한 장면이다. 다음은 [지 딸도 아닌 예나를 왜 달고 가] 항목의 나무위키에서 가져온 드라마 그 장면의 대화이다.

박도준: 아니, 그나저나 선정이는 왜 도망간 거요? 그리고 지 딸도 아닌 예나를, 왜 달고(데리고) 가?! 쯧... (말 끝나자 주스를 마신다)
한윤진: 예나... 선정이 딸이에요.
박도준: (충격을 받고 주스를 흘린다.) 아니...


한동안 이 장면은 패러디를 양산했다. 그런데 이 유명한 아침 드라마의 장면은 다들 알지만 아침드라마가 폐지된 것은 많은 사람들이 모를 것 같다. 나도 이 책을 읽으며 알게되었으니 말이다. 지상파 3사 중에서 마지막까지 아침드라마를 사수해온 sbs마저 아침드라마를 2021년 9월 '아모르 파티' 이후로 폐지한 것이다. 이 책은 2022년 3월에 나왔으니 없어진 아침드라마를 위한 마지막 헌정같은 책이 되었다. 그럼에도 아침드라마의 희극같은 요소 때문에 이 책은 코믹스러운 부분이 많다.

이 책을 쓴 남선우 작가는 직장에서는 창작자들을 돕고, 밖에서는 전시를 기획하고 미술에 대한 글을 쓴다고 한다. 아무튼 시리즈를 제안받았을 때 문득 아침드라마를 떠올렸고, 처음으로 책을 한 권 쓰게 되었다.

작가는 아침드라마를 굳이 장르로 따지자면 비극인지, 희극인지에 대해 고민하다가 친구에게 '내 사위의 여자' 줄거리를 요약하면서 저도 모르게 웃기지 않냐고 물었다. 줄거리는 만삭의 부인이 교통사고로 죽은 뒤에도 장모를 엄마처럼 모시고 살아가던 남자 주인공이 힘들게 새 사랑을 만났는데, 알고 보니 그 새로운 연인을 오래전에 버린 엄마가 자기랑 살고 있는 장모였다. 게다가 예비 새 장인은 현 장모의 옛 연인이자 전처를 차로 치고 도주한 남자였다. 그런데 장모의 직업은 가정 행복 전도사이다. 이 얘기를 들은 친구는 웃기지 않다고 비극이지 않냐고 반문했다. 그때 작가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 담긴 책의 어느 구절이 떠올랐다. 비극이란 관객보다 고귀한 인물의 고통을, 희극이란 그보다 저급한 인물의 고통을 다루는것으로 규정된다는 구절. 고귀한 이의 고통에는 몰입하므로 슬퍼지고, 저급한 이의 고통에는 거리를 두므로 웃음이 난다고. 작가는 윤리적 허영심을 들킨 것 같아 멋쩍어한다. 이내 아침드라마에 미안해하지만 모두 폐지되었으므로 아침드라마를 이제 볼 수 없는 것이야말로 비극임을 느낀다.

아무튼 시리즈는 지금까지 22년 5월에 나온 '아무튼, 할머니'까지 총 50권이 나온 인기 많은 시리즈이다. 위고, 제철소, 코난북스 이 세 출판사에서 번갈아가며 내는 듯 하다. 그동안 여기서 나온 흥미로운 주제의 책이 많았는데도 '아무튼, 아침드라마'가 이 시리즈 중 내가 처음 읽은 책이다. 요가, 문구, 떡볶이, 여름, 연필 같은건 나도 좋아하기 때문에 슥 넘긴것 같다. 하지만 아침드라마 라니?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지만 이걸 책으로 낼 만큼 이것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 지점에 끌린 것 같다. 소소한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어떻게 좋아하는 것을 유지하고 그것을 삶에까지 적용하는지 볼 수 있는 책이기도 했다. 아침드라마를 보는 애청자라는 관점도 삶의 소중한 일부분이 될 수 있구나 하면서 재밌게 읽었다.


작가는 아침드라마가 폐지되자 아침에 일어나 아침드라마 대신 뉴스를 보기 시작했다. 아침드라마가 없는 삶이 공허하거나 비극적이진 않지만 다시 돌아온다면 무척 기쁠것이라고 말한다. 내일을 궁금하게 하는 동력, 깨기 싫은 아침에 기운을 더해준 흥미진진함, 가족끼리 공유할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이 돌아오는 것에 기뻐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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